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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IST 장학금 환수 논란에 부쳐
    카테고리 없음 2013. 10. 26. 00:54

    생명과학과 열풍의 실체

    내가 대학생이 되던 해 KAIST에는 생명과학과 열풍이 불었다. 자연과학 분야가 다들 그렇듯, 생명과학과도 한 학번 당 인원이 적은 편으로 보통 30명 쯤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려 100명 가까이 생명과학과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는 무학과로 선발한 뒤 2학년 때 전공을 결정하기 때문에 학과 인원에 제한이 없다.

    당연히 생명과학과는 난리가 났다. 평소에 하나만 열리던 강의도 분반을 나눠 열리기 시작했다. 소형 학과였던 생명과학과가 대형학과로 변신한 것이다. 미래의 BT기술에 대한 기대 때문인가? 당연히 아니다. 2005년부터 MEET/DEET가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화학과도 마찬가지였다. 의전원 입시 때 반영되는 GPA를 위해서는 화학과가 더 낫다며 자신의 ’전략’을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생명과학과의 생화학과 화학과의 생화학 중 어느 게 더 유리할지에 대한 고민도 심심찮게 이야기되었다.

    졸업하면 뭐할꺼니?

    순수한 열정으로 생명과학과를 선택했다가 전향했던 학생들도 많았다. “거기 졸업하면 뭐하는데? 거긴 연구소밖에 못가지 않아? 40되면 짤린다며”라는 질문을 수십번 듣다보면 더이상 사족을 달기 싫어진다. 배부른 소리하느냐고 불평할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은 언제나 상대적이지 않은가. KAIST에는 과학고 출신이 많고, 그 과학고 친구들이 또 많이들 의대에 가있다. 이쯤되니 문제가 어디서부터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친구들과 비교되면 한없이 작아진다. 결국 3,4학년이 되어서 갑자기 MEET/DEET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내 친구가 교수 추천서를 받기 위해서 지도교수를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지도교수가 자길 보자마자 화부터 냈다고 한다. 이유를 들어보니, 자신의 학부 지도학생이 6명 있는데, 1명을 제외한 5명 모두가 MEET/DEET 추천서를 받아갔다는 것이다. 남은 1명이 그 친구였다. 그 친구는 그 해 서울 서초에 있는 C모 의대에 무사히 진학하였다.

    나라를 위해 수고가 많다.

    이런 분위기다보니 당연히 대학원 진학율은 죽을 쑨다. 내 친구 한명이 생명과학과 대학원을 지원했던 학기에, 자대 출신은 2명 밖에 없었다. 학부 때 학과 친구들이 몇 명 있었는지 생각해보자. 문제는 도대체 무엇일까?

    MEET/DEET에 대한 고민은 대학원을 가서도 끝나지 않는다. 1년 쯤 지나 함께 공부하다 의대로 갔던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말을 한다. “그래 힘들지..? 그래도 너같은 애들이 나라를 일으킨다. 수고가 많다…” 짜증나는 건 이런거다. 남 좋으라고 대학원을 선택한게 아닌데, 저절로 애국자가 되어있다. 모두의 인식이 그렇다. 때로는 이런 말도 듣는다. “그 집 아들은 공부잘하더니 왜 의대 안갔대요?

    결국은 사회적 인식이 문제다. 학교에서 제시하는 비전과는 상관없었다. 이공계인이 국가 기술의 자랑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시작부터 손해보는 느낌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게 싫냐고? 40이 되면 치킨을 튀긴다는 이야기도 수십번 듣다보면 (진지하게) 국가보다 내가 더 걱정된다. 선배들을 보자. 삼성 LG에 취업한 아저씨들이 의전원으로 돌아오고 있다.


    국감에서 KAIST 학생 중 15%가 의전, 치전, 로스쿨로 진학해 국고가 낭비된다며 장학금 환수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강동원 의원은 “KAIST에서 이공계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한다. (기사: <국감현장> KAIST 인재유출에 “장학금 환수” 검토) 웃기는 이야기다. 우리 나라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KAIST의 문제인가? 과연 의사가 인기 많은 이유는 의대에서 비전을 잘 제시하기 때문일까.

    국가의 과학인재 육성 정책 실패를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떠넘기려는 발상이 어이가 없다. 국가는 이공계 분야에 학생들이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길에 관심이 없다. 장학금만 얹어주면 된다는 사고를 가지니까 해결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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